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일까?” “행복을 찾고 싶은데, 왜 만족은 늘 잠깐일까?”
19세기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이런 질문에 아주 솔직하고 비관적인 답을 내놨어요. 그는 말했죠. “삶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한 깊이 있는 사유였어요. 오늘은 쇼펜하우어의 철학 속에서, 고통과 욕망, 예술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게요.
쇼펜하우어는 어떤 시대에 살았을까?
그는 1788년에 태어나, 헤겔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어요. 당시 독일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성"과 "진보"를 강조했죠.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런 낙관주의에 회의적이었어요.
📌 그는 칸트 철학과 인도 사상(특히 불교와 우파니샤드)에 영향을 받았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고통에 대해 비판적으로 탐구했어요.
그의 대표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인간 삶을 "맹목적인 의지의 반복"으로 보며, 고통의 구조를 철학적으로 해부한 작품이에요.
삶은 왜 고통일까? — ‘의지’라는 본성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세계는 두 가지 측면으로 존재해요:
- 표상(Representation) —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상 세계
- 의지(Will) — 그 현상의 본질, 즉 삶을 움직이는 내면의 힘
그는 말해요:
인간은 단지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욕망하는 존재다.
- 우리는 배고프면 먹고, 외로우면 사람을 찾고, 부족하면 더 가지려 해요.
- 그런데 이 욕망은 채워지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요.
- 그 과정이 반복되며, 우리는 항상 결핍 상태에 머무르게 되죠.
📌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말해요:
“삶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인한 고통의 연속이다.”
그럼 희망은 없는 걸까? — 예술과 자비의 가능성
쇼펜하우어는 단순한 허무주의자가 아니었어요. 그는 고통을 인정한 뒤,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통로를 제시해요.
- 예술의 힘
- 예술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욕망 없는 몰입을 가능하게 해요.
- 특히 음악은 의지의 세계를 직접 표현하는 예술로, 가장 높은 위로를 준다고 봤어요.
- 자비와 공감
-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때, 경쟁이 아닌 연민으로 연결될 수 있어요.
- 고통받는 존재끼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윤리적 태도
- 욕망 줄이기 (동양사상과 연결)
- 불교의 무욕, 금욕, 자아 소멸과 유사하게,
- 그는 삶의 중심을 욕망이 아니라 평온한 내면으로 옮기기를 제안해요.
고통은 없앨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자유를 찾는 방법은 있다.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 그 욕망은 나를 충만하게 만들고 있나요, 아니면 지치게 하나요?
- 나는 얼마나 자주, 조용히 ‘멈추는 연습’을 하고 있나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살기 힘들다’고 느낄 때, 그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긍정하지 않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있어요.
“고통은 삶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똑바로 보려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통에 휘둘리지 않게 돼요.
한 줄 요약
쇼펜하우어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고통’에서 찾았지만,
그 고통을 직면하고 넘어서려는 사유 속에 깊은 구원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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